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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새기는 미디어, 전자 문신

작성일 : 2015.06.09

조회수 : 44874

쌓인 피로를 풀려고 오랜만에 대중 사우나에 갔다고 치자. 간단히 샤워를 하고 뜨거운 김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탕에 몸을 담그려고 발을 떼는 순간, 욕탕 가장자리에 반신욕 자세로 자리를 잡은 큰 덩치의 뒷모습이 보인다. 널빤지처럼 넓은 그의 등에는 용무늬 문신이 요동친다. 게다가 머리 스타일도 깍두기 모양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멀찍이 떨어진 탕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그 문신의 주인공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다. 뭘 봐 하면서 괜한 시비를 걸어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더 심약한 사람이라면 그가 탕에서 나올 때까지 샤워기 앞에서 애꿎은 몸이나 벅벅 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덩치의 등짝에 그려진 용은 그가 속한 조직, 그의 신분이나 힘을 나타낸다. 문신은 자연 상태의 피부에 바늘로 자국을 내고 색소를 넣어 표현하는 신체 변형이다. 예로부터 인류는 문신을 신성함, 다산성, 성적 매력, 집단의 결속, 신분의 상징, 형벌의 표시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했다. 문신은 신체를 미디어로 사용한 여러 방식 중의 하나다.

피부 훼손을 통한 정체성 표현

▲ 딩카족의 상처 문신

문신 말고도 신체를 훼손하거나 변형해서 뜻을 전달하는 방식은 많다. 아직도 그렇게 하는 일이 있을까 싶지만, 지구 곳곳에서 인류는 신체 훼손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표현한다. 그 충격적인 사례를 작년 말 취재 차 방문한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직접 확인했다. 남수단은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해 193번째로 UN에 가입한 최신생국으로 딩카, 누에르 족 등 여러 종족으로 이루어진 국가다. 2013년 12월 15일 수도 주바에서 대통령과 부통령의 호위부대 사이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 사건 당시의 살바 키르 대통령과 리액 마샤르 부통령은 독립투쟁 시절부터 노선과 파벌이 달랐다. 두 사람의 출신 부족도 각각 대립 관계인 딩카 족, 누에르 족이어서 갈등의 골이 깊었다. 양측의 작은 충돌은 순식간에 딩카 족과 누에르 족이 서로 공격하는 종족 갈등으로 번졌고, 내전으로 확대됐다. 전국적으로 수만 명이 사망했고 1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생겼다.

다수 종족인 딩카 족의 폭도들은 큰 도시에서도 라이벌인 누에르 족을 골라내 학살했다고 한다. 평상시의 신체 특징만 놓고 보면 딩카 족과 누에르 족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여러 종족이 섞여 사는 대도시에서 어떻게 다른 종족인 줄을 알아냈던 것일까? 필자는 몇 달째 난민보호소에서 살고 있는 피난민을 인터뷰하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예로부터 남수단의 종족들은 이마에 상처를 내는 풍속을 가지고 있다. 종족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시다. 보통 어릴 때 날카로운 칼로 이마에 선을 긋거나 기하학적 문형의 상처를 낸다. 종족마다 긋는 선의 개수와 무늬가 다르다고 한다. 폭도들은 도시 거주민의 얼굴에 새겨진 선의 수와 무늬를 보고 타 종족을 골라내서 살해했던 것이다. 요즘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는 아이들은 피가 나고 고통스러운 이 시술을 받지 않지만, 목축을 하는 시골에서는 아직도 행해지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열릴 전자 문신의 세상.

 

지금까지 문신은 아프리카 오지의 부족이나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조만간 ‘간편하게 전자 문신 하나 새기시죠.’ 하는 세상이 올 것 같다. 지속적인 건강관리를 받으려면 더욱 그런 권유를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서구 의료계에서는 이미 전자 문신이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진짜 문신과 다른 점은 전자문신을 새기는데 피를 흘리지도, 아프지도 않다는 점. 아이들의 장난 거리 중 얼굴에 대고 문지르면 그림이 새겨지는 문신 스티커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문신이 부착된 투명한 막을 팔뚝에 대고 문지르면 고무 패치가 피부에 부착된다. 고무 패치 안에는 실리콘 전자 회로가 들어가 있다.

전자 회로에는 센서가 설치돼 있어서 체온, 심장박동, 뇌파 등을 감지한다. 패치에 판독기를 대면 생체 정보가 전달되고 이를 근거로 의료진은 환자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방을 내린다. 기본적인 생체 정보를 전달하는 문신에서 더 나아가 당뇨병 환자의 혈당까지 측정하는 전자 문신도 시제품이 나왔다. 현재는 당뇨병 환자가 집에서 혈당을 측정하려면 손끝을 혈당측정기의 바늘로 찔러 나오는 피를 기계로 분석하거나, 혈당 측정 종이에 묻혀야 한다. 한 순간이지만 바늘로 따끔하고 피를 내야 하는 일은 하루에도 두세 번 측정을 해야 하는 환자들에게 고역이다. 혈당 측정 문신은 이런 고통을 덜어준다. 피부에 부착된 문신의 포도당 감지 센서가 포도당 농도를 측정해서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상용화만 된다면 당뇨병 환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임이 틀림없다.

▲ 혈당 측정용 전자 문신

원시의 신체로 회귀하는 미디어

사용자의 고유한 암호를 설정한 문신을 부착하고 있으면 신원 확인도 가능하다. 문신을 스마트폰, 노트북, 자동차 등 소유기기와 로그인 기능으로 연동해 놓으면 도난과 분실의 위험이 줄어든다. 문신의 암호를 읽어 들일 때만 소유 기기가 작동하게 설정해 놓으면, 도선생이 슬쩍해간다 해도 무용지물이다. 전자 문신의 기능이 여기까지 확장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남수단의 종족들이 집단에의 소속감과 타 집단과의 구별을 위해 얼굴에 새기는 문신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인간이 추구하는 미디어는 결국 원시 인류가 사용했던 미디어의 기능과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전자 문신이 감지하는 내 생체 정보가 주변의 사물인터넷 전자기기에 전달, 연동되면 기분에 맞는 음악과 영상이 흘러나오고, 주변의 온도와 습도가 적절하게 자동 조절된다. 전자문신을 통해 개인은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지배자가 된다. 이것은 또 원시 시대의 샤먼, 주술사들이 몸에 신성한 문신을 새기고, 얼굴에 분장을 하고 외부의 정령을 깨워 소통하는 것과 근본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최신의 미디어는 가면 갈수록 원시의 신체로 회귀한다.

▲ 체온측정용 전자문신

 


손현철 KBS PD  webmaster@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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